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직서를 내밀던 날, 손끝이 떨렸다.
마치 낯선 곳으로 떠나는 기차에 오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퇴사 후 3개월.
이제야 조금씩 내 마음이 어떤 걸 향해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퇴사 직후의 공백기,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들,
그리고 그 시간 끝에서 마주한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하여.
퇴사 직후,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건 ‘해방감’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퇴사를 하면 자유로울 줄 알았다.
늦잠을 자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조금은 나태하게 살아보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반복될수록 이상한 공허감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뭐 하는 거지?”
달력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시간은 많았지만, 에너지가 없었다.
매일 쌓이던 업무 스트레스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내가 쓸모없어진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퇴사하면 당연히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일이 사라지자 정체성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일부러 바쁘게 살았다.
자격증 강의, 운동, 사람 만나기. 하지만 이상했다.
몸은 움직였는데 마음은 늘 허전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아직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 ‘무엇을 하기 싫은가’가 먼저였다
퇴사 후 두 달째, 나는 생각을 바꿨다.
‘지금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 대신,
‘내가 다시는 하기 싫은 건 뭘까?’를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랬더니 의외로 답이 쉽게 나왔다.
지속적인 야근, 끊임없는 비교,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사는 일,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일.
이런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은,
곧 내가 어떤 일을 원하고 있는지를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일할 수 있는 구조,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바라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좋아했던 순간들’을 돌아봤다.
기획서를 밤새 만들며 아이디어에 몰두했던 시간,
누군가의 글을 다듬으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
혼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정리하며 위안을 얻었던 날들.
이제 보니, 그건 모두 창작과 기획, 그리고 쓰기와 관련된 일들이었다.
나를 설레게 만든 건 ‘작은 시도’였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인가?’
정답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저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매일 아침, 500자씩 아무 주제나 써보기로 했다.
처음엔 막막했다. 하지만 몇 줄씩 글을 써보면서
나는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정답’만 찾으려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몰라서가 아니라,
원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글쓰기 습관은 일상의 흐름을 바꿔놨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기억하고, 질문해야 했다.
하루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지인에게 보여준 글 한 편이 작은 일거리로 이어졌다.
소규모 매거진에 글을 기고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돈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누군가 내 글을 ‘필요하다’고 말해준 그 사실이,
무기력하게 가라앉았던 나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그때 알았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조금씩 삶에 끌어오는 것.
그게 ‘나다운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내 일’의 기준이 바뀌었다
퇴사 전의 나는 커리어 플랜, 연봉, 직무 적합도 같은 기준으로 일의 가치를 판단했다.
하지만 퇴사 후 3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일에 바라는 것은 훨씬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가?
이 일을 하며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일은 결국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곳이다.
그 시간이 나를 점점 소진시키는 방향이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오래 버틸 수 없다.
반대로, 아직은 작고 불안정하더라도
그 일 안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든다면,
그건 이미 가치 있는 일이다.
지금 당신이 퇴사 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혹은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꼭 묻고 시작해보면 좋겠다.
“나는 지금 어떤 순간에 가장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
그 질문이, 당신을 ‘하고 싶은 일’로 이끄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